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구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아버지 구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 모든 신발들이 그 역할을 다하느라 찢기로 구겨지고, 밑창이 닳고 흙탕을 뒤집어쓰고 살겠지만 아버지 구두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신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요? 202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은 아버지의 구두를 소재로 한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구두
김사라
새벽녘 아버지 구두가
집을 나선다
내가 잠들었을 때 나가서
잠들기 직전에야
돌아오는 구두
어떨 때는 내가 잠들고 나서
꿈속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짝길 걷다 다쳤을까
옆구리가 조금 찢긴 구두
밑창은 할머니 무릎뼈처럼 닳았다
아버지 구두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제 빛깔을 잃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버지 구두를 오늘은 꼭 수술대 위에 눕힌다
구두 의사 면허증이 없지만
첫 수술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구두를 안았다
구둣솔로 아버지 삶에 떨어진 먼지를 턴다
우리 집 앞마당까지 놀러 오는 비둘기가 모이를 콕콕 찍어 먹듯
솔에 콕콕 바른 구두약으로 긴급 처방을 내린다
이제 기름칠만 하면 잘 나가는
내 새 자전거처럼
아버지 구두도 막힘없이 걸어 나가겠지
아버지 삶에
윤기를 내기 위해
아버지 나이만큼 주름진 구두를
호호 불어 토닥토닥 어루만진다
비로소
아버지 삶에 떨어진 흙먼지를
모두 털어내고
하루에 고됨도 말끔히 씻어낸다
새로 변신한 아버지의 구두가
콧노래 흥얼이며
밝은 새벽녘 길을 향해 나간다.
코로나로, 집값으로, 실업으로 참 고된 시절입니다. 서로 당겨주고 보듬어주며 힘을 낼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사람을 제일 그리워할 사람은 우리 부모님들일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힘껏 달려가 아버지라는 호칭을 가만히 불러보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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