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차이입니다. 오늘은 2023년 현대시학 조은솔 시인의 등단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비밀은 살아남기 위해 낙서를 한다'인데요
낙서로 만들어진 비밀이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조은솔
원래 손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전염성의 인기척에 빈손으로 피해야 했어요
막다른 곳으로 증상이 옮겨 다녔어요
보이는 것은 손인데
보이지 않는 것은 손이 아니라서
심장에 딸꾹거리는 고정관념이 새겨졌어요
심장이 시퍼렇게 뛰기 시작하면
괄호를 찾아 숨어야 했어요
눈물이라는 단어가 걸터앉은 문장은
번지기만 할 뿐
지워도 지워지지 않았어요
편들어 주는 일은 남일 같았는지
시트에 묻은 힌트를 탈탈 털며 쉬쉬했어요
머뭇거리느라 띄어쓰기를 많이 한 일기는
편집이 어렵다고만 했고요
손을 잡는 것은 오로지 수건돌리기를 하려는 것일 뿐
연결된다고 믿지 않기로 했다나 봐요
호칭을 두려워하면서 나는 몰래 작아졌어요
작아지는 것은 작은 것일 뿐
의미를 부여한다고 커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요
물음표를 찾아
나를 향해 투척하는 일을 이제 멈추고 싶어요
문장부호 말고 밝은 거울에 나를 파묻고
물끄러미 관찰하고 싶어요
* 아무도 보지 않는 낙서에 ‘눈물이라는 단어가 걸터앉은 문장’이 가득 들어차 있다고 상상하니 시가 굉장히 슬프게 느껴집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슬픔은 그래서 투명한 눈물로 남몰래 얼굴에 낙서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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