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차이입니다.
목련이 지고 이제 벚꽃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벚꽃을 생각하며 벌써 온통 하얀 산책길이 기대됩니다.
오늘은 2024년 천년의 시작 봄호에 실린 조은솔 시인의 ‘그라디바’를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제목이 궁금함을 자아내서 알아보니 소설이기도 하고,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걷는 여자”라는 의미의 부조상 이기도 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본 “걷는 여자”, “산책자” 는 어떤 말을 건넬까요? 지금 들려드리겠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걸어요
선호되는 코스를 걸으려고
적금을 깨고 걸어요
골고다 언덕 위를
성스러운 무덤이 있는 성당 옆을
전망대가 된 탑 근처를 자타가 공인하는 통곡의 벽 앞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걸어요
임명장을 받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남기며 걸어요
걷다 보면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걸어요
돌아보면 나에게서 벗겨진 신이
흘겨보는 인파 사이에 있다는 걸 알아채고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발은 헹궈도 냄새가 나고
썩은 속은 뒤집어도 썩어 있어서
생각보다 별로인 신을 구겨 신고 걸어요
쥐가 나도 걷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부은 발을
신 안으로 간신히 비집고 걸어요
내 무게가 신을 닳게 하고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도
걷다 보면 폭설을 뒤집어쓴 신이
퇴근 후에 발자국을 남겨요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에요
지구 반대편까지 가려고
나와 나 사이를 중얼거리는 밤
지금은 아무도 없어서
발뒤꿈치를 내가 들어요
* 빌헬름 예젠의 소설
* 듣고 싶은 ‘목소리’는 뭘까? 신 안으로 넣는 부은 발의 느낌, 눈 위에 찍힌 발자국. 여기서 같이 걷고 있었는데 문득 저기 어딘가에 있는 느낌에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읽게 되는 시였습니다.
오늘은 조은솔 시인의 ‘그라디바’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도 좋은시로 만나 뵙겠습니다.
이상으로 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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